이란 “美 태도 바뀌어야 호르무즈 개방”

모하마드 바게르 졸가드르 이란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즈)
이란의 최고 안보 정책 결정 기구인 최고국가안보회의가 미국이 “태도를 바로잡을” 때까지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발표는 해협 통행을 관리하는 협정 협상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란 국영방송은 8일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 모하마드 바게르 졸가드르의 성명을 보도했다. 졸가드르 사무총장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고위 지휘관도 겸하고 있다.
성명에 따르면 미국은 다시는 이란을 위협해서는 안 되며, 이란과 역내 동맹 세력을 상대로 한 전쟁을 영구적으로 끝내야 한다. 또 이란 항구에 대한 해상봉쇄를 해제하고 역내 주둔 군을 철수시켜야 하며, 전쟁 피해에 대해 “완전히 보상”하고 제재를 해제하며 동결 자산을 “무조건” 반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요구 사항들은 원래 미국과의 항구적 합의를 위한 이란 측 조건으로, 이란의 불법 핵 프로그램과 60% 농축 우라늄 비축 문제 해결까지 포괄하는 포괄적 협정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지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여는 수준의 협정을 위한 조건으로 제시됐다는 점에서, 이란이 요구 수위를 낮추지 않은 채 오히려 소규모 협정에 최대치 조건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바라크 라비드 이스라엘 채널12 워싱턴 특파원은 이날 방송에서 “미국이 이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며, 이번 요구가 며칠 전 보류했던 군사적 옵션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다시 밀어붙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측은 아직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미국은 그동안 해상봉쇄를 해제하기 전에 호르무즈 해협에 관한 수용 가능한 합의가 먼저 이뤄지길 원해왔다. 지난 6월 체결된 잠정 합의에 따르면 제재 해제 일정과 보상 계획은 최종 합의에 포함될 예정이며, 동결 자산 문제도 협상에서 다뤄지기로 돼 있다. 최종 합의를 위한 60일간의 협상 기한은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왔으나,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운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둔 오만과는 별도의 관리 협정에 근접했다고 밝혀왔다. 아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8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항로, 특히 통과 경로 설정에 관해서는 합의에 근접했다고 전했다. 다만 해협 재개방 자체는 다른 조건들에 달려 있다며, 현재 상황의 책임을 미국의 잠정 합의 위반 탓으로 돌렸다.
이슬람혁명수비대도 이날 별도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은 오만과의 협상과는 무관하며, 워싱턴이 테헤란의 조건을 수용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혁명수비대는 성명에서 “적은 이란과 오만, 그리고 다른 국가들 사이에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른 협상에 개입하는 것을 자제하고, 해협 개방을 위한 이란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재국인 오만은 협상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분위기” 속에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며, 해협에서의 선박 공격을 규탄했다. 아랍에미리트는 8일 자국 선박 한 척이 이란 미사일의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전쟁 전까지 국제 수로로 인정받아온 이 해협은 여전히 선박 통행량이 낮은 상태다.
한편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같은 날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측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부과할 계획이 없다고 미국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밴스 부통령은 “이란 체제 내 일부 인사들”이 통행료 부과를 거론한 적은 있지만 “이란 측은 호르무즈 해협에 통행료를 매길 계획이 없다고 우리에게 밝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실제로 어떤 행동이 나오는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밴스 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가 걸프 지역에서 전쟁 이전과 같은 양의 원유와 가스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쟁 초반 이란이 다수의 기뢰를 부설해 놓은 것이 문제라며, 기뢰 제거와 더불어 이란 측이 상선을 향해 발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밝혔다.
중재국 외교관 한 명은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밴스 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라며,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한 임시 합의에는 양측 모두 통행료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된다고 확인했다. 다만 이란은 이 임시 합의가 만료된 이후에는 통행료를 부과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란 국영매체 프레스TV는 지난 7일 이란 의회 위원회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에 요금을 부과하고 미국·이스라엘 등 “적대국” 선박의 통행을 금지하는 예비 법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밴스 부통령은 이란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태”라며 종전 협정 체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며칠간 진전이 있었다고 본다”며 “우리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재래식 군사력을 파괴했고, 비대칭 군사 역량도 크게 약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이란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장기적인 변화를 받아들일 의향이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며, 그렇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